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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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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머지 2020. 12. 1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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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늑대아이>


1. 보호하고, 지켜보고, 지지한다.

하나 라는 평범한 여자가 늑대인간과 사랑에 빠져 두 아이를 낳는다. 첫째는 딸 유키, 둘째는 아들 아메. 둘째 아메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의 아빠는 늑대인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되고, 이후 하나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이다. 아빠가 인간이 아닌 늑대인지라 아이들은 반인반수로 태어났고, 감정에 따라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고, 늑대의 모습이기도 했다. 

어느 날, 넓은 공터를 네발로 마음껏 뛰어다니며 신난 아이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던 하나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이사 가자. 어떻게 살지 선택할 수 있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살지 선택한다니!!
내가 인간이고, 여긴 인간세상이니 너희들도 인간으로 살아야지가 아니라, 너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할지, 늑대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할지 아직 모르니까 선택할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자니. 당연한 말인데도 놀라웠고, 존경스러웠다. 

하나는 정말로 그 어떤 선택도 종용하지 않고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게 환경만 만들어준다. 아이들이 늑대의 모습을 해도 들키지 않고 뛰놀 수 있는 산 속 깊은 외딴 집으로 이사를 갔고, 인간의 모습으로 학교에 다니고 싶어하는 유키를 위해 원피스를 만들어주며 돕는다. 유키가 며칠 학교에 가지 않았을 때도 아무말 없이 기다려주었고, 보석이나 장신구를 모으는 다른 여자아이들과 달리, 아이들이 싫어할만한 뱀이나 벌레같은 것들을 좋아해서 고민하는 유키에게 “신경쓰지 말고 그냥 너답게 살면 되잖아” 라고 따뜻하게 말해준다. 그 뿐인가. 학교를 가지 않고 산으로 들로 다니는 아메를 믿고 지켜봐주고, 붉은 여우를 자신의 선생님이라고 소개하는 아메의 선택을 존중하여 여우에게 우리 아메 잘 부탁드린다며 진심 담긴 인사를 건넨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사실 하나가 마음 편히 아이들을 기다려준 건 아니다. 꿈 속에서 아이들의 아빠인 늑대인간을 만났을 때, 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이들이 벌써 각자의 길을 가려나봐. 당연한 건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하나도 마음 속으론 걱정도 고민도 많아 불안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내색하지 않고 바람직한 부모의 역할을 했다.


‘아이의 인생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참견하고 강제하는 부모가 아니라, 보호하고 지켜보고 지지하는 부모가 당연히 좋은 부모입니다 <올어바웃 해피니스 中>’

하나는 인간의 삶을 선택한 유키와, 늑대의 삶을 선택한 아메를 보호하고, 지켜보고, 지지했다. 

완전히 늑대의 삶을 선택한 아메를 산으로 떠나보내며 하나가 한 말도 충격이었다.

“너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고? 아이들의 인생을 위해 모든 걸 다 버리고 산 속 깊은 곳에 들어와 그 개고생을 하며 살아놓고??

아이들이 다 큰 후 '내가 널 위해 어떻게 했는데'라며 발목잡는 수많은 부모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대사였다. 나도 그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 모두 내 행복을 위한 나의 선택이었을 뿐이다.(실제로 해준게 없다는 건 비밀)


2.나도 늑대와 결혼했다.


영화 속에선 아이들의 아빠가 늑대였고, 아이들도 늑대인간이라는 판타지로 표현되었지만 내 생각엔 이건 판타지가 아닌 완벽한 은유이다. 

나는 인간의 모습을 한 남자와 결혼했지만 나와 그의 공통점은 두발로 걷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생활습관, 가치관, 세계관, 육아관. 그 어떤 것도 나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할 수 없다. 차라리 인간이 아니라 늑대라면 아, 늑대라서 그렇구나 이해라도 할 수 있지, 이건 뭐 같은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수 있을까. 나에게 당연한 것 중 그에게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다. 내가 인간이 아닌건지 그가 늑대인건지 헷갈린다. 그가 바라보는 나도 그럴 것. 

그건 우리 부부 뿐만이 아니다. 내 주변만 봐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른 존재가 만나 부부가 되었다. 그 다름의 정도는 늑대와 인간의 차이 딱 그 정도이다. 하여 그가 나와 같은 인간이라기보단 늑대라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각자의 정신건강에, 부부사이에 더 좋다.
(영화에선 하나와 늑대가 사랑하는 모습만 나왔지만, 늑대인간이 극 초반에 죽지 않고 하나와 육아를 함께 했다면 서로 다른 육아관으로 부딪혀 두 번 이상 크게 싸웠다 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

우리가 낳은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모습만 두발로 걷는 인간일 뿐 생전 처음보는 늑대아이와 다름 없다. 인간스러운 엄마를 닮은 부분, 늑대스러운? 아빠를 닮은 부분이 섞여 있고, 그 아이만의 모습이 가장 많다. 부모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인간인 나를 닮아라, 늑대인 아빠를 닮아라가 아니라 하나가 유키에게 한 말처럼 ‘너답게 살아라’ 일 것이다.


천재적인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한 말 중 나에게 도끼가 되어준 말이 있다.

 
“최고의 예술가는 대리석의 내부에 잠들어있는 존재를 볼 수 있다. 조각가의 손은 돌 안에 자고 있는 형상을 자유롭게 풀어주기 위하여 돌을 깨뜨리고 그를 깨운다.”


돌을 보고 어떤 조각을 할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돌 안에 이미 들어있는 본질을 발견하고 그것을 깨워내는 것이라니. 나는 이 말이 두고두고 인상 깊었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에도 적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아이로 키워야겠다가 아니라,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아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발견하고 북돋아 주는 부모. 그런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고, 하나에게서 그 예시를 보았다.

사실 늑대와 인간 중에 한쪽을 선택하는 건 오히려 쉽다. 우리 아이들은 70억명 중 단 하나뿐인 존재이기에 그 안에 저마다 다르게 반짝이는 별을 발견하는 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기울여도 겨우 가능할까말까한. 나는 내 눈과 귀를 다른 사람이 아닌 내아이를 향해 활짝 열어야겠다고 또 한번 다짐해본다.


영화<늑대아이>는 판타지가 아니라 극사실주의였다. 오히려 늑대인간이라는 캐릭터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하나 라는 캐릭터만 판타지였다. 나는 그렇게는 못한다..


#늑대아이
#올어바웃해피니스
#행복을묻는당신에게
#미켈란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