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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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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머지 2020. 5. 1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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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갑질>
 
부모와 자식 간에 갑과 을을 논한다는 게 우습지만 잘 들여다보면 부모는 명백한 갑이다. 관계에서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갑이라면 부모는 무시무시한 갑이다. 어릴 땐 생존여부 자체를 쥐고 있고 커서도 여러 부분에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한민국의 부모는 자신이 어떤 갑질을 하고 있는지, 아니 갑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나는, 자식이란 내 몸을 빌어 태어났을 뿐 나와는 별개인 하나의 인격체라고 생각한다. 하여 어릴 땐 내가 생존에 관련된 부분에서 조금 더 알기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부모와 자식은 수평적인 관계라는 아들러의 이론에 동의한다. 실제로 9살, 5살인 나의 아이들은 내가 알려줘야할 것보다 내가 배워야 할 점들이 더 많다. 아이들은 내가 열심히 책을 읽어 겨우 깨달은 바들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나는 깨달았을 뿐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

아이들은 매순간 집중하여 일상을 즐기고, 내일이 걱정되어 오늘을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겉모습에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지도 않으며, 선물의 가치를 가격으로 매기지도 않는다. 어제 잘못했어도 오늘 용서하는 넓은 마음을 가졌고,잘못을 하면 금방 사과한다. 물건을 새롭게 구매하는 것보다 원래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기에 판단이나 충고를 쉽게 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놀이로 만들어내며, 사소한 것에도 깔깔깔 웃어 옆에 있던 사람까지 행복하게 해준다.
지금 바로 생각나는 것만도 이 정도인데 이 아이들보다 내가 더 잘 아는 것이 있긴 할까.
 
그래도 나는 아이들에게 ‘알려줄’ 뿐 갑질을 하진 않는다. 뉴스에서 본 그 무시무시한 재벌가 사람들처럼 ‘을’에게 다그치며 화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좋은 말로 여러번 말해도 말을 안 듣기에 언성을 높였을 뿐이다. 갑이 을에게 협박하듯이 한 적도 없다. 단지 놀이감들을 깨끗이 정리하지 않기에, 필요없는 거면 내가 버려주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아침에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기에 그럼 학교 가지 말라고 말했을 뿐이다. 나는 갑질 한 적이 없다. 

이게 정말 갑질이 아닐까.
 
나는 내가 내 아이에게 하는 모든 말을, 내 아이도 나에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수평적인 관계이니까. 아들러의 책을 읽고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까. 우리가 정말 수평적인 관계라면, 만약 내 아이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면, 나에게 여러 번 이야기한 걸 내가 들어주지 않았단 이유로 나에게 언성을 높여 말한다면, 나는 어땠을까. 너그러이 이해하고 좋은 말로 할 때 못들어줘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을까.
 
 
인간은 거울이 없으면 스스로를 볼 수 없다. 나는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나를 보지 못했다. 최근 거울에 비출 기회가 있어서, 그것이 나를 비추고 있는 거울임을 깨닫게 되어서 다행이다. 내가 낳았다는 이유로, 어리다는 이유로, 약하다는 이유로, 내가 조금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이유로, 금방 다시 나에게 웃어준다는 이유로, 갑질을 하는 못난 인간이 되지 않으리라.  하여 먼훗날 내아이들이 나를 의무감으로만 대하는 슬픈일이 없도록 하리라. 때마다 회식날이면 어쩔 수 없이 웃는 얼굴로 참여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을 먼저 요청하지 않는 '을'이 되어 나를 대하지 않게 하리라. 자꾸 잊고 또 실수해도, 다시 이 글을 읽고 또 마음을 다잡고 애쓰리라.
 
오늘의 반성 끝.
 
#아들러심리학
#나는갑질한적이없다
#그러게좀잘치우자얘들아